작은 관심이 세계적인 수출 상품으로
2차전지 전력기기업체 마루온은 충북이 자랑하는 수출기업이다. 지난해(2021년)에만 전 세계 9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했다. 비결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
마루온은 2009년 설립됐다. 한연수 대표는 그로부터 4년 전인 2005년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배터리 방전장치’가 개발되면 유용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당시에는 배터리의 경우 충전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 배터리를 방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질 못했다.
이유는 있었다. 정기적으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 배터리 폐기를 위해서는 배터리 잔여량을 파악해야 했던 것. 배터리 잔여량이 많으면 계속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 수순으로 가는 것이다. 이 잔여량 체크를 위해서는 배터리 방전이 필수적이었다.
▲마루온은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 충방전기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사진은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마루온 사옥 전경. [사진=김준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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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발생 줄인 배터리 방전기 개발 나서
당시 배터리 방전기술이 없지는 않았다. 열을 가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게 배터리 재활용업체로서는 무더운 더위와 싸워야 하는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 자동차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자동차 내부 부품과 설비에 큰 관심이 있던 한 대표는 호기심으로 열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전기를 직접 개발하게 됐다.
개발한 설비를 지인에게 전달했는데 놀라운 말을 들었다.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하는데 높은 성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배터리를 충전했더니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것이다. 배터리 잔여량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당시 주로 사용되던 2차전지는 납축전지인데 이것은 사용할수록 저항 성분이 생겼다. 이 성분은 방전돼 있는 상태에서 굳어지면서 배터리의 성능이 낮아지는 요인이 됐다. 한연수 대표는 방전 과정에서 저항 성분을 없애, 성능을 개선하는 효과를 본 것이다.
한 대표는 자체 개발한 방전기가 배터리의 열화된 부분을 다시 살려내면서 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을 확인하고 두 기능을 모두 갖춘 ‘충방전기’를 개발하게 됐다. 일명 재생복원기인 ‘충전방전시스템’이다. 지인의 부탁으로 시작한 제품인데 사용 만족도가 높아지자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하면서 반응을 보았다. 그리고 2009년 성능을 많이 끌어올리자 ‘비즈니스가 되겠다’며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자동차를 좋아해서 취미로 만들어 본 것이 사업가로 변신하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한연수 마루온 대표는 지인의 제안으로 열이 적게 나는 방전기를 직접 설계하다가 세계적인 성능의 충방전기를 찾아내 창업까지 하게 됐다. 한연수 대표가 회사가 확보한 다양한 등록증서 앞에서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 = 마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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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설립 직후 해외에서 인콰이어리가
4년여 제품 개발 경험을 살려 2009년 본격적으로 생산에 뛰어든 가운데 얼마 안 돼 태국에서 연락이 왔다. 제품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다며 수입 의사를 밝힌 것. 회사는 제품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지는 몰랐다. 한연수 대표는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와 수출로 이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바이어는 태국에서 이 설비가 필요해 사방으로 찾던 가운데 한국에서 관련 제품이 판매된다는 소식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바로 연락을 취한 것이다. 수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태국에서는 마침 배터리 재생복원공장이 생겨나고 있던 시점이어서 적지 않은 물량을 공급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땅이 넓고 특히 정글 등 오지가 많은 태국에서는 무선통신을 위해 많은 기지국이 설치돼 있는데 여기에서 폐기 시점이 도래한 배터리가 많아 마루온에는 기회가 된 것이다.
기회는 계속 이어져 인도네시아에서도 제품을 찾았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도 배터리 재생복원공장을 짓고 있는데 여기에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과 손잡고 세계 시장 개척
2010년에는 마루온에는 큰 기회가 찾아왔다. 벨기에의 세계적인 전동자키 개발 및 물류회사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배터리 재생복원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며 마루온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처음에는 큰 제안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벨기에 회사 정보를 확인하고 놀랐다. 전 세계 주요국에 지사를 갖춘 세계적인 기업이었던 것이다. 결국 수개월의 검토 과정을 거친 후 2011년 2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벨기에 회사는 마루온에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200kg에 달하는 장비를 이동성을 강화한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부탁이었다. 결국 회사는 1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애초 200kg인 제품을 크게 줄인 30kg 제품으로 만들었다. 해외에서도 오지나 산속에 위치한 배터리 교체를 위해서는 이동성을 높인 설비가 필요했던 것. 여기에 특화한 제품을 개발하자 호평을 받았다.
▲마루온은 전기차 배터리 방전시스템 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에너지저장시스템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사진은 마루온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준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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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방전 시장도 진출
회사는 신시장 개척에도 뛰어들었다. 이 분야에서 이름을 높이자 2019년 재활용업체가 먼저 사업을 제안한 것. 당시 전기차(EV) 배터리 재활용을 위해서는 소금물에 방전하는 ‘염수방전’ 방식을 써 왔는데 이 방식은 화재 위험이 높고 무엇보다 완전히 방전하는데 시간이 5~10일이나 걸렸다. 전기차 시장 초창기에는 재활용 배터리가 많지 않아 염수방전이 가능했지만, 전기차 보급이 증가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뀐 것이다. 결국 재활용업체가 마루온을 찾아와 방전 후 단락까지 가능한 대용량 방전시스템 개발을 요청한 것이다.
이번에도 시장은 마루온에게 기회 요인을 제공했다. 배터리 화재 사건과 함께 배터리 리콜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활용 배터리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 그러면서 EV 배터리 재활용에도 방전설비가 필수장비로 자리를 잡았다.
신은성 마루온 상무는 “리콜 사태로 인해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갑자기 뜨거워졌다”며 “재활용 공장도 많이 늘어나면서 저희를 찾는 곳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우리 기업이 중국업체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폐배터리가 나오기도 하면서 배터리 제조사들도 방전설비를 찾았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수출로 이어졌다. 우리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자연스럽게 현지에 재활용 시설을 갖추기 때문이다.
마루온은 그동안의 기술력을 집약한 제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65kWh EV 리튬배터리의 경우 2시간 이내 완전 방전이 가능한 성능을 보유했다. 5~10일 걸리던 기간을 2시간 이내로 줄인 셈이다. 여기에 센서를 통한 자동스위칭 기능 내장으로 동작 전압 범위에서 별도 조작 없이 정전류 방전모드로 자동 진행되도록 했다. 이 분야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다.
하이브리드 ESS 제품 개발 한창
회사는 축적된 기술을 활용한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시스템(ESS)과 무정전 전원장치(UPS) 기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ESS 제품이다. 신재생 에너지 저장은 물론 저렴한 심야 시간대의 전기를 저장하였다가 전기 요금 피크 시점에 사용하여 전력 요금 절약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마루온은 ‘어떻게 하면 배터리를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관리가 편리한가’라는 두 가지 명제로 배터리 복원시스템, 충전기, 방전기, 배터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했다.
한연수 마루온 대표는 “사물인터넷(IoT)을 구현하여 배터리관리시스템을 개발하였듯, 불편한 일상에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며 “이제 전력제어 기술과 IoT 기술을 바탕으로 UPS, ESS 등 전력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어 “넘버원이 아닌 ‘유일한(Only One)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다”며 “이런 기술력과 인본경영이란 가치로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덧붙였다.